奉永華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봉영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9일 최봉직(崔奉稷)·정만기(鄭萬基)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였으나 동지인 최봉직·이명수(李明洙)·김석만(金錫萬)·최병한(草丙漢) 등이 사전 검거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1921년 남만주에 있는 대한독립단의 국내특파원 김기한(金基漢)의 권고를 받고 동 황해도지단 설립에 참가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동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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