賓永燮
1887-05-03 ~ 1936-08-1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賓永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빈영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장수(長水)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새벽에 천도교 장수 교구장인 박영춘(朴永春)의 지시에 따라 양일표(梁日杓)·장재만(張在萬)·신동개(辛東開)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실상을 알릴 목적으로 장수군 장수면(長水面)·산서면(山西面)·천천면(天川面)·계내면(溪內面)내 각 동리 요소의 벽과 게시판 등에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피신하였으나 일경이 가족을 못살게 탄압하자 6개월만에 장수경찰서에 자진하여 들어왔으나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해 4월 8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