賓泰紋
1906-04-12 ~ 1973-03-0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빈태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진주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8년 7월 창립된 진주청년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경남 진주에서 신간회 진주지회에서 상무집행위원로 활동하였고, 1930년 9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진주야체이카의 회원이 되었다. 11월 진주청년동맹 검사위원, 1931년 4월 진주농민조합 청년부 위원이 되었다. 그 해 5월경 ‘조공재건설준비위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빈태문은 1934년 3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72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4년 3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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