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文景
(1874-09-26)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Pedro Soea, 徐文慶, 徐文卿, 徐文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문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74년 9월 26일경 경기도(京畿道) 파주군(坡州郡) 적전면(赤田面) 문산포(文山浦) 상동(上洞)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군인으로 활동하다가 1905년 4월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농장에서 일했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의원, 1912년에는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베라크루즈주 남쪽에 있는 오학기나(Oaxaqueno) 지방으로 이주하였고, 1914년 3월 오학기나지방회 재무로 임명되었다. 1916년에 유카탄으로 돌아와 메리다지방회 총무로 임명되었고, 1917년 11월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21년 3월 쿠바로 이주하여 같은 해 6월 쿠바지방회가 조직될 당시 회장으로 선출되어 쿠바 한인들의 단결을 도모하였다. 쿠바 마탄사스지방회는 1921년 11월 1일 회장 서문경과 박창운 명의로 쿠바정부에 정식 관허장을 신청하였다. 1924년도 마탄사스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25년도 평의원, 1926년도 부회장, 1927년도 평의원, 1929년도 부회장, 1930년도 대의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국내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1930년 마탄사스지방회에서는 학생운동 후원단을 조직했고 서문경은 후원단의 총무를 맡았다. 1931~1932년도 마탄사스지방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34년도 총무에 임명되었다. 1923~1944년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가 주관하는 각종 기념식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다. 1910년 이후 1944년까지 의무금, 독립금, 인구세, 광주학생운동 동정금, 광복군 후원금 등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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