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嶺海
1902-01-13 ~ 미상·현대
이명·자·호 徐羲洙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영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부산(釜山) 사람이다. 1919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한 뒤 일본 경찰의 검거망을 피해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이듬해인 1920년 다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29년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고려통신사(高麗通信社)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 주불통신원(駐佛通信員)으로 근무하면서 유럽 각국의 언론기관과 연락을 취하며 일제의 침략과 잔학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고발하였다. 또한 한국역사소설인 『어느 한국인의 삶과 주변』을 불어(佛語)로 저작하고 그 내용 속에 「3·1독립선언문(三一獨立宣言文)」을 삽입하여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서방세계에 알렸다. 1935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불외무행서(駐佛外務行署) 외교특파원(外交特派員)으로 선임되어 유럽 각국의 요인들에게 우리의 정세를 널리 선전하고 한국 독립에 대한 동정과 원조를 요청하였으며, 1944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산하의 주불예정대사(駐佛豫定大使)로 임명되어 유럽 각국을 상대로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45년 3월 프랑스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외교관계 수립을 요청하자, 같은 달 12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임시정부 주불대표(駐佛代表)로 선임되는 등 25년 동안 임시정부의 외교업무와 독립운동 선전에 지대한 공적을 쌓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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