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允濟
1908-02-07 ~ 1969-03-30·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윤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경원(慶源) 사람이다. 대종교(大倧敎) 종사(宗師)인 서 일(徐一) 선생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친의 뒤를 따라 국조(國祖) 단군(檀君)을 신봉하는 대종교에 입교한 뒤 교세 확장을 위한 전교 사업에 힘썼다. 대종교인 안희제(安熙濟)가 1932년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성(東京城) 일대에 토지를 매입 개간하여 발해농장(渤海農場)을 개척하고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게 되자, 이곳에다 대종교 총본사(總本司)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발해 고궁 유지(遺址)에 천진전(天眞殿)을 건립하는 한편, 교육기관으로 대종학원(大倧學園)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천진전 건립을 추진하면서 이를 후원하기 위해 이극로(李克魯)가 윤세복(尹世復)에게 〈널리 펴는 말〉이라는 후원문을 지어 보낸 것을 빌미로 일제는 대종교에 대해 일대 탄압을 가하고 중심인물들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1942년 11월 19일에 일어난 이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말미암아 단애종사(檀崖宗師) 윤세복 이하 대종교 중심인물 21명이 붙잡혔는데, 그도 역시 이때 일경에 붙잡혔다. 그 뒤 1944년 1월 2일 목단강(牧丹江) 경무청 액하(掖河) 감옥에서 출옥한 뒤에도 대종교 전교를 위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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