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載錫
1909-02-07 ~ 1968-02-1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재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서재석은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일제의 편파적 수사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광주학생운동 1주년이 되는 1930년 11월 3일을 학생들에게 기억하게 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하고자 하였다. 1930년 10월 28일 전북 전주군 삼례면에서 최응식(崔應植)·장순국(張順局)과 함께 격문을 약 30매 작성하여 그날 밤 삼례공립보통학교 4, 5, 6년 교실에 들어가 책상 속과 위에 배포하였다. 격문의 내용은 “학생제군이여. 정신을 환기하라. 11월 3일은 광주학생사건의 기념일이다. 그 날에 무슨 이유로 암흑의 생활을 해야 하는가. 조선인이 압박당한 11월 3일을 기념하라”라는 것이었다. 서재석은 격문의 작성 및 배포로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2월 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주거침입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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