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鎭文
1900-08-25 ~ 1928-11-1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진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본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일제 경찰의 고문에 희생되었다. 서진문은 1926년 신내천현(神奈川縣) 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으로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지도하였다. 1927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입회하여 일본부에 배속되어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0월 25일 일왕(日王)의 즉위식인 소위 '어대전(御大典)'을 앞두고 횡빈경찰서(橫浜警察署) 형사들이 신내천 조선노동조합 횡빈지부를 습격하였을 때 서진문을 비롯한 한국인 항일운동 지도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서진문은 잡혀가기 전부터 심장 맥박이 105까지 올라갈 정도로 병세가 위급하였다. 이에 동지들은 서진문의 석방을 일경에 요구하였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를 불러 주지도 않았다. 서진문은 거의 빈사상태가 되어 그해 11월 16일 석방되었고, 그 휴유증으로 출옥 이튿날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거의 죽어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진문은 유치장에서도 "얼른 이군(李君)을 구원하라! 나는 벌써 살아나지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같이 검거되었던 동지들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서진문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일제 경찰의 가혹한 고문때문이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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