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昌務
(1889) ~ 1925-04-2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春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창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경 소련 연해주로 방면으로 망명하여 적극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독립군단인 혈성단(血誠團)에 가입하였다. 혈성단은 1920년 11월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오운현(烏雲縣)에서 결성되었다. 1920년 말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 후 서북간도의 독립군단들이 북만주 밀산(密山)으로 이동해 독립군단연합체인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자 혈성단도 여기에 가입하였다. 이 후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초 소련 연해주로 이동하였는데, 이 때 연해주에 있던 서창무가 이 독립군 연합체의 일원인 혈성단에 가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후 서창무는 대한독립무정단(大韓獨立武政團)·군정서(軍政署)·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등의 독립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서창무는 특히 자신이 소속한 독립군단의 군자금 모금을 위해 활약하였다. 1923년 음력 7월 17일 서창무는 동지 박창환(朴昌煥)·이성필(李成弼) 등과 북간도 연길현(延吉縣) 용지사(勇知社)에 가 한인 재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1924년 1월 10일에는 화룡현(和龍縣) 명신사(明新社)의 한인재산가 및 친일파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틀 후인 1월 12일에는 다시 연길현으로 가 수신사(修信社)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서창무와 동지들의 이와 같은 활동은 일제의 훈춘(琿春)영사관 분관 경찰에 탐지되어 같은 해 1월 22일 체포되고 말았다. 국내로 압송된 서창무는 1925년 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강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 같은 해 4월 20일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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