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化壹
1881-01-15 ~ 1936-05-1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서화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목포(木浦)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목포에서 서상봉(徐相鳳)·강석봉(姜錫奉) 등 기독교인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남궁 혁(南宮赫)·오도근(吳道根) 등 청년 학생들과 연락을 취하여 태극기와 경고문 등 수십매를 만들어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 청년회원 및 150여명에 달하는 상업학교 학생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군중과 합세하는 등 목포 시내 각처에서 분산하여 만세시위 운동을 일으키며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같은 해 6월 16일 그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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