薛億萬
1912-05-28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설억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전공립제2보통학교(大田公立第2普通學校) 5학년을 중도 퇴학하고 1932년 4월경부터 신문배달부를 했다. 같은 해 6월 중 대전군(大田郡) 외남면(外南面) 인단산(仁丹山)에서 정창세(鄭昌世), 이삼봉(李三奉), 김지성(金知成)과 만나 공산주의에 기반한 신문배달반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행동방침으로는 매월 2회 모임, 매월 회비 10원 납부, 마르크스주의 연구 매진 등을 정했다. 8월경 신문배달반이 해산되고 같은 달 중순 경 정병원(鄭炳源) 집에서 김지성, 박병기(朴炳琪)와 함께 다시 신문배달반을 조직하고 활동했다. 11월 8일 8시경 김지성 집에서 원종응(元鍾應), 이삼봉, 김지성 등이 항일 전단을 등사판으로 인쇄했다. 이튿날인 11월 9일 새벽 김지성 집에서 박병기에게서 항일 전단을 배포해 줄 것을 부탁받고 군시제사공장 내에 전단을 배포했다. 설억만은 1932년 공산주의에 기반한 신문배달반에 가입하고 항일 전단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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