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達翼
1900-09-21 ~ 1929-01-2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孫慶業, (字)呂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손달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영주의 3.1만세운동은 이산면 오하근과 봉화군 상운면의 박인서에 의해 계획되었다. 이들은 3월 20일 영주읍 장날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준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수백 명의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부르자 일본 헌병은 총검으로 군중을 강제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손달익은 조선독립의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장수면 호문리에서 장윤덕(張潤德)·송득룡(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에게 웅곡산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여 함께 웅곡산에 도착하였으나 순찰 중인 헌병보조원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손달익은 1919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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