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龍祐
1923-01-19 ~ 1999-02-2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손용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선문화학원 중등과(中等科)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초순 이래 서울 성북정(城北町)에서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던 중동학교(中東學校) 4학년생 이완기(李完基)로부터 중동학교 내의 일본어 배척,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배격, 군대교육의 불찬성 등 반일적인 행동을 듣고, 문화학원 내에서도 동료 학우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동지를 규합하기로 하였다. 또 졸업 후에는 농촌청년을 지도해야 하며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결행해야 한다는 등에 대해서도 협의하였다. 이후 같은 해 9월 초순 이래 문화학원을 ‘민족화’시키고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제패망과 조선독립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패전(敗戰)을 기회로 조선독립에 매진해야 함을 역설하고, 함께 민족적인 서적들을 학습하였다. 또 일본역사의 허구성 등을 언급하며 배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올림픽 우승자 손기정(孫基禎)의 일장기(日章旗)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東亞日報)』나 『조선일보(朝鮮日報)』가 폐간되는 등을 예로 들며 동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문화학원 내에서 이와 같이 활동한 결과, 동급생 이종호(李鍾浩)·전태현(全泰賢)·박내수(朴來洙)·조재홍(趙在弘)·은인관(殷仁寬)·박형락(朴炯洛) 등과 함께 독서모임을 갖고 여러 차례 회합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또한 이들은 일반 한국인에게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같은 해 9월 28일 오후 5시경, 사직공원(社稷公園)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성부(京城府)의 국세조사(國勢調査) 게시판에 ‘대한독립만세’ 등의 낙서를 하였다. 이는 이른바 일제의 시정기념일(施政記念日)인 10월 1일을 기하여 조선독립을 선전하기 위해 실천한 것으로서, 당시 일본 경찰을 긴장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이른바 ‘불온낙서 사건’이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에 발각되면서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까지 합세하여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9일 문화학원을 비롯해 중동학교 및 배재중학(培材中學) 학생 9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육군형법(陸軍刑法) 위반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 200일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3년 2월 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