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學坤
미상 ~ 1909-04-2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손학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4월 전남 곡성군(谷城郡)에서 소광선의진(蘇光先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자 자결, 순국하였다. 지리산(智異山) 남쪽 구례(求禮)와 인접한 곡성은 의병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유림 중 조영선(趙泳善)ㆍ조우식(趙愚植)ㆍ유해용(柳海容)은 1906년 6월 태인(泰仁)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했는데, 이른바 '순창 12의사'에도 포함되었다. 곡성 출신의 안자정(安自精)은 의병장 이석용(李錫庸)과 1912년에 결성한 임자밀맹단(壬子密盟團)에도 참여하였다. 곡성 지역의 의병 활동은 이 지역 출신인 의병장 노인선(盧仁先)이 주도하였다. 노인선은 처음에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한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陳)에 투신하여 활동했다. 그 후 고향으로 내려와 활동하다가 1908년 말 체포되었다. 신정백(申正栢, 일명 申正宇) 역시 조규하의진에서 활동하다 의병장이 전사하자 독립하여 곡성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손학곤은 1909년 4월 소광선의진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그는 일본군에 함께 체포된 김옥내(金玉內)가 도주를 기도했다는 명목으로 먼저 피살되자, 1909년 4월 29일 밤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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