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性學
1894-08-19 ~ 1961-05-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성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1919년 3월 초순부터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끊임없이 울려퍼지자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오봉리(五峰里)에서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같은 해 4월 7일 마을 뒷산에서 송귀남(宋貴南)·최극삼(崔極三) 등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뒷산에 모이게 한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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