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昇均
(189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宋承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승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6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加州) 윌로우스 한인비행사 양성소 간사,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 발기인, 한미공채위원, 『독립』 발기인,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 단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임시의장,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하와이총지부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16년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朔都地方會) 회원으로 활동하고, 1917년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 식자 기계채청장 제9회 동맹자로 재정을 후원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과 김종림(金宗林) 등이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자, 간사가 되어 학교 운영에 참여하였다. 1925년 4월 하와이 오아후 와이아와에서 임성우(林成雨)ㆍ최선주(崔善宙)ㆍ현도명(玄道明) 등과 조미구락부를 조직하여 한인 1ㆍ2세 간의 상업과 사교를 장려하였다. 1942년 10월 오아후에서 60만 달러를 목표로 연합 자선금 모집 행사가 개최되자, 안원규(安元奎) 등과 소대장 모집위원으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12월 한미공채위원으로 선임되어 태평양전쟁 전비(戰費)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3년 8월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의 기관지 『독립』 발기인 및 하와이 통신원, 1944년 3월 하와이총지부 총단장, 5월 중한민중동맹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1944년 9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가 소집한 대표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어 회의를 주재한 뒤 감사부 위원으로 선정되었고, 11월에는 조사위원이 되었다. 1916년부터 1945년까지 국민의무금, 독립의연금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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