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仁洙
1896-02-18 ~ 1947-11-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宋小敬, 西村德政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인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문경의 3.1만세운동은 산양장터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일본 경찰에 주동자가 붙잡히고 거사는 성사되지 못했다. 1919년 4월 11일 오후 7시경 문경군 산북면 금룡사 소속 지방학림 기숙사에서 송인수·성도환(成道煥)이 만세시위를 위한 계획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들은 기숙사에 있는 최덕찰(崔德察) 외 수십 명에게 “4월 13일 대하 헌병주재소 앞에 집합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하자”고 권유하고 13일에 헌병주재소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 4월 13일 오후 3시경 산북면 소재 금룡사 지방학림 학생 18명이 태극기 4개를 들고 대하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려고 시도하였으나 주지 스님의 저지로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다음 날 일본 헌병 6명이 급파되어 학생 18명 전원을 체포하였다. 송인수는 4월 11일 오후 7시경 금룡사 소속 지방학림 기숙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검사가 공소했다. 1919년 6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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