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一柱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일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중국 남만주의 압록강변 지역인 집안(輯安)·관전(寬甸)·환인(桓仁)·유하현(柳河縣) 등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일제는 1920년 10월 이후 서북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이주 한인을 참혹하게 탄압한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이 참변을 일으킨 후에도 간도지역에 꾸준히 일정한 군경(軍警)의 병력을 주둔시켜 이주 한인사회를 감시하고 독립군을 탄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25년 6월 11일 중국측과 소위 ‘삼시협정(三矢協定)’을 맺어 본격적으로 재만 한인사회를 탄압하였다. 삼시협정의 내용은 중국측이 한인 독립운동자들을 체포하여 일제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명칭은 국가간의 협정이었으나 그 내용은 마치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지시하는 명령문 같았다. 이 협정이 맺어진 후 중국측은 혹독하게 독립군 및 이주 한인을 탄압하였다. 군·관뿐 만아니라 심지어 민간인들까지 현상금에 눈이 어두워 바로 이웃에 사는 한인들을 살해하거나 무력으로 끌어다 일제측에 넘겼다. 일제는 이들 중국인들이 배일한인을 넘길 때 포상금을 지급했는데, 생포한 한인을 넘길 때는 20원을, 살해해 목을 가져올 경우는 40원을 주었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측의 이 같은 야만적 행태 때문에 수많은 독립군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따라서 이를 견디다 못한 한국 독립군들은 중국의 관공리들을 향해 여러 장의 통고문을 보내 그들의 행위를 규탄하고 이 같은 행위가 계속 이어질 때는 바로 중국측이 독립군의 적임을 명시했다. 통고문 하단에는 그 때까지 중국측에 의해 목숨을 잃은 독립군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송일주도 이 같은 중국측의 탄압에 의해 1927년 5월 이전에 집안현에서 희생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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