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在祜
1906-10-12 ~ 1974-07-12·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재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25년 6월 무관학교 설립자금 모집을 위해 북경에서 입국한 제2유림단(儒林團)의 핵심인 형 송영호(宋永祜)와 함께 활동하면서 본인 소유의 논 1,300여 평을 매각한 대금 600원을, 형을 통해 김창숙(金昌淑)에게 군자금으로 송금하였다. 1926년 2월 일경이 형 송영호로 오인하여 붙잡혔으며 심한 고문을 받다가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생명은 건졌다. 그후 부인 유임이(柳任伊)도 비명횡사케 되어 더욱 항일의식이 고양되었다. 1927년 9월 영주군의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회원 및 영주청년동맹(榮州靑年同盟) 집행위원으로 항일의 선봉에서 활동하였으며 1930년 3월 7일 일경에 붙잡혔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31년 국내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탈출,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봉천성(奉天省) 안동(安東)에서 일경에 붙잡혀 2개월의 구류처분을 받은바 있으며 서울 팔판동(八判洞) 등지로 이주하며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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