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柱一
1892-06-0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주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6일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 송흥진(宋興眞) 집에서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이 만나 광주 3.1운동을 협의했다. 송주일은 3월 8일 송흥진으로부터 만세운동 관련 서신을 받았다. 서신을 받은 송주일은 이틀 후인 3월 10일, 소룡리 기독교 교회당에서 약 70명의 신도들에게 서신을 읽어주며 만세운동의 취지를 전했다. 그리고 3월 17일에는 마을 길가의 황문국(黃文局)의 집 앞에서 조병렬(曺秉烈)・조병철(曺秉喆)・조병권(曺秉權) 등 4명에게 “광주의 조선인 여러 학교는 전부 7일간 휴교하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다. 한국은 이후 독립할 것이다. 일반에게 전달하라”며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했다. 송주일은 만세운동 권유로 사창헌병주재소 헌병에 체포되어 장성헌병분대에 구류되었다. 1919년 4월 2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부분 취소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0년 4월 9일 경성감옥에서 출옥하였다. 4월 28일 칙령(勅令) 제120호에 의해 징역 11월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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