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兌彬
1915-11-10 ~ 1954-05-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宋原兌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송태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전공립제1보통학교(大田公立第1普通學校) 졸업 후 1930년 12월 1일부터 군시제사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1932년 10월 중 공장 남자 숙소 제2호실에서 서상복(徐相福), 박병기(朴炳琪) 등을 만났다. 송태빈 등은 이들에게 낮은 임금, 질나쁜 식사, 장시간 노동 등에 대한 비판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 및 노동자 단결과 투쟁 실행에 대해 들었다. 11월 4일 남자 숙소 게시판에 방 교체시 한국인에게 이루어진 부당 대우를 비판하는 내용을 게재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모아 한국인에게 차별적 처우를 결정한 일본인 기숙사장과 간사를 응징하기로 결의했다. 송태빈은 간사 응징에 일조했다. 11월 7일 송태빈 외 수십 명의 노동자들은 작업 개시 종이 울려도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기숙사에 모여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송태빈은 동맹파업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로 인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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