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昌國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승창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지역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소속되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린 독립군은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승창국은 이러한 시기인 1923년 중국 집안현(輯安縣) 집동총관소(輯東總管所) 재무로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변경된 이후에도 계속 유임되어 일반주민의 보호 및 민지(民智)개발에 힘썼다. 그후 독립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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