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德五
(188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덕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7월부터 1909년 2월까지 전북 정읍(井邑)ㆍ흥덕군(興德郡)에서 김영백의진(金永伯義陣)의 십장(什長)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영백 의병장은 1907년 11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에 근거지를 구축한 후 장성을 비롯한 전남 영광(靈光), 전북 고창(高敞)ㆍ부안(扶安)ㆍ정읍군 등 전라도 서부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9~10월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시기에도 체포를 면할 정도로 기민하게 행동했지만 일제의 집요한 추적을 피할 수 없자, 같은 해 12월 5일 전북 고부(古阜) 헌병분견소에 자수하였다. 1910년 5월 3일 교형(絞刑)을 받고 순국하였다. 김영백의진의 십장으로 활동하던 신덕오는 1909년 1월 20일 김영백의진의 부하 9명과 함께 전북 정읍군 내동리(內洞里)의 민가에 들어가 엽전 25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09년 8월 15일 정읍군 남일면(南一面)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같은 해 12월 4일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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