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度洪
미상 ~ 1925-01-0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도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5년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연길현(延吉縣)을 중심으로 한 북간도지역에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등 다수의 무장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를 눈의 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1920년 10월 간도출병을 단행하여 북간도지역의 독립운동세력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 등을 통하여 패하게 되자 그들은 재만한인들을 다수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독립군들은 재만한인사회에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하여 재기를 모색하였다. 한편 러시아로 이동했던 독립군들은 1922년 러시아에서의 내전이 종식되자 러일간의 외교적인 교섭으로 더 이상 그곳에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북간도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입은 사람들이 다수 있었고, 일제의 탄압 또한 강하여 연길현 지역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들은 별로 조직되지 못하였다. 한편 서간도지역에서는 독립운동단체의 재정비가 이루어져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된 이후 다시 정의부(正義府)와 참의부(參議府)가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만주지역에서는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인, 1925년 1월 8일 오전 6시 만주 대한독립단 제2연대 제3대장으로 활동하던 신도홍은 연길현(延吉縣) 삼상구(三上溝)에 있는 동지 장빈삼(張彬三)의 집에서 일경과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신도홍의 시신은 동지역에 있는 조선인으로 조직된 조선민회(朝鮮民會)에 주어졌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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