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斗湜
1896-02-12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申斗昌, 黃鶴明, 申斗植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두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1918년 8월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에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연락기관을 봉천(奉天)의 십간방물산도매상(十間房物産都賣商)으로 위장 설치해 놓고 연락업무를 수행하였다. 동년 9월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장 이석(李錫)과 동지 전성인(田誠忍)과 함께 봉천에서 폭탄을 제조하였다. 그리하여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여 의열투쟁을 지원하려고 계획하던 중, 1919년 9월 15일 밤에 봉천성(奉天城) 내에 천성여관(天成旅舘)에 숨겨 두었던 폭탄 1개가 땅에 떨어져 작열되어 전일(田一:田誠忍)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따라서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상해(上海)로 피신하여 1920년 3월 4일에 상해 임시정부 내무부 지방국장에 피임되어 근무하였으며, 1920년 5월 20일에는 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동년 12월에는 상해 대한적십자회에서 적십자병원의 설치 등을 위해서 4대(隊)의 행동대를 설치하게 되자 그는 3·1대에 속하여 모금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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