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萬植
1889-10-0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申在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만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흥미면(興嵋面) 안락리(安樂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8월부터 비밀결사 대한국민적십자회(大韓國民赤十字會)에 가입하여 회원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 13일 안락리에서 박봉희(朴鳳禧) 등은 6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4일에도 안락리에서 조업증(趙業曾)ㆍ차문옥(車文玉)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신만식은 안락리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7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조종수(趙宗秀)ㆍ차문옥ㆍ조평도(趙平道)ㆍ김창수(金昌洙)ㆍ박덕윤(朴德允)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국민적십자사에 가입했다. 1921년 5월까지 독립사상을 선전하며 회원 수십 명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0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