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晩熙
1901-04-27 ~ 1985-06-2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만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24년 3월 송내호(宋乃浩)·정남국(鄭南局) 등과 함께 완도군 소안면(所安面)내 각 리(里)의 노동단체를 연합하여 회원이 7백 명에 달하는 노농연합대성회(勞農聯合大成會)를 조직하고 간부직을 맡아 활동했다. 노농연합대성회는 1924년 9월 25일의 제2회 정기총회 개최시에 입석한 일경(日警)에게 퇴장을 명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상방(喪房)을 철폐하며, 소작인을 기만한 악질 지주와의 절교를 선언하는 등의 활동을 펴 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불온시한 일경에 의해 그는 1924년 10월 대성회의 다른 간부 11명과 함께 구속되어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5년 11월 8일에 열린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 집행위원회의 사회를 맡아 도초도(都草島) 주민들의 소작쟁의에 지원금을 모금하여 보낼 것을 결의하였고 그 해 12월 31일에는 소안도(所安島) 노농연합대성회 중앙집행위원회의 사회를 맡아 노농운동의 조직과 지주대책에 관한 결의를 이끌어 냈다. 또한 1926년 4월 25일의 완도청년연합회(莞島靑年聯合會) 제3회 정기총회에서도 의장으로서 사회를 맡아 청년, 노동, 농민, 여성, 소년 등 각 부문운동의 추진 방안을 논의하게 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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