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梅孫
1888-01-06 ~ 1931-01-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매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촉발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3월 31일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禮山面)의 장날에는 6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예산군청과 예산헌병분대 앞에서 시위를 시도하였으나 일본 헌병의 탄압으로 시위 주도자들이 체포되면서 해산되었다. 이후 4월 3일 신예원리(新禮院里) 장터에 3백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그날 밤에는 예산면·대술면(大述面)·신암면(新岩面)·신양면(新陽面)에서 각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4일에는 예산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산에 횃불이 밝혀지고 군내 각 면의 18개소에서 큰 시위가 벌어졌다. 다음날인 4월 5일은 예산면의 장날이라 오후 2시경부터 군중이 몰려들어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오후 4시경에는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 일본 헌병과도 충돌했다. 신매손은 이처럼 3·4월에 걸쳐 일어났던 예산군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예산헌병분대(禮山憲兵分隊)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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