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福均
(188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복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신복균은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인산면(麟山面) 인산시장(麒麟市場)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산군은 고려·조선에 걸쳐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물이 많이 살았고, 또 대한제국 말기까지도 유학자들이 많이 나서 개화 친일에 반대하는 의병항쟁에 앞장섰던 만큼, 외래 종교인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 못하였다. 새로운 종교 세 력으로는 천도교가 일찍부터 전포되었으며, 3·1독립운동 계획에 있어서도 천도 교인 이동락(李東洛)이 진작부터 서울의 천도교 중앙총부와 연락하고 인근 고을 의 천도교 간부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진행하였다. 3월 30일 평산 읍내 은담리(隱潭里)·빙고리(氷庫里)의 여러 곳에 "대한국독립 만세(大韓國獨立萬歲)"의 전단이 나붙고, 이튿날인 31일에는 금암면(金岩面) 한 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 2곳에서 만세 시위가 크게 벌어 졌다. 음력으로 30일은 한포·기린 2곳이 모두 장날이었기 때문에 많은 장꾼들 이 합세하여 시위군중 600여 명씩이나 되었다. 4월 1일에는 다시 신봉균(申鳳 均)·김용운(金龍雲)·조중선(趙仲善)·김경욱(金京旭)·노상돈(盧相頓)·이병권 (李炳權) 등이 주동이 되어 만세시위를 벌이고 약 400명의 대열이 기린주재소로 몰려가 시위하다가 일경의 발포로 희생이 있었다. 시위 후 체포된 신복균은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 상해 등으로 징역 4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9월 22 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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