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成五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성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연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천도교인 강원보(姜元寶)ㆍ박영서(朴永瑞)ㆍ여현구(呂鉉九)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9일 밤 읍후리(邑後里) 여현구의 집에 모여, 3월 11일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여러 곳에 계획을 알렸다. 또한 독립선언서를 장연읍 남문 성벽에 붙였다. 3월 11일 오후 1시경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시위대가 시장으로 모였다. 경찰은 만세 참가자를 체포하고 단속을 강화했으나 다음 장날인 3월 16일에도 3백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했다. 읍내에서는 1개월 후인 4월 11일에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장연군 읍내리에 거주하던 신성오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4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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