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永和
1882-06-28 ~ 1943-05-1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申昌原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영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선건국단(朝鮮建國團)’을 조직하고, 강원도 책임자가 되어 동지와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신영화는 1938년 전북 정읍(井邑)에서 김언수(金彦洙)가 창시한 신흥종교에 입교하였다. 김언수가 창시한 이 종교는 최수운의 시천교와 강증산의 증산교 두 교의에 의거하여 유불선 3교를 통합한 것이었다. 1940년 5월 10일, 신영화는 김언수의 초청으로 정읍군 덕천면(德川面) 신월리(新月里)에서 교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김언수는 “우리 교도의 손으로 조선을 독립시켜야할 시기가 도래하였고, 그 시기는 1942년 음력 2월 21일로써, 일본·중국 및 서양제국도 우리나라의 지배하에 들어온다”고 말하고 동지 규합에 노력하자고 하였다. 신영화는 이에 찬동하여 강원도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동지 규합·세부조직 결성·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신영화는 1940년 12월에 강원도 울진군·평창군·영월군을 다니며,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영월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1942년 9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150일 통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다 1943년 5월 14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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