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禮均
(1892) ~ 1923-07-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예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신예균은 함북(咸北) 길주군(吉州郡) 동해면(東海面)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는 함북 명천군(明川郡) 하가면(下加面) 화대동(花臺洞) 13번지였다. 1920년 음력 1월경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서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였다. 이여룡(李汝龍), 김철석(金哲石), 정석암(鄭成岩), 마희섭(馬希燮) 등과 함께 함북(咸北) 명천(明川), 성진(城津), 회령(會寧), 청진(淸津) 등지에서 독립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신예균은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8년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3년 7월 형무소 내에서 적유단(赤油團)을 조직하고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간수와 격투 중 총상을 입고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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