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龍涉
(1897) ~ 1924-09-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申龍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용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1922년경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1922년 8월 30일 남만주 환인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통군부(統軍府) 대표 등 71명이 참석하여 결성한 것으로, 함께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재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활신(高豁信), 민사부장 이웅해(李雄海), 검무부장 최명수(崔明洙),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선전국장 김창의(金昌義),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사판소장 이영식(李永植),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식산국장 박득산(朴得山), 권업부장 강제하(康濟河),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교통국장 황동호(黃東浩),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을 들 수 있다. 신용섭은 1923년에는 참의부(參議府) 제2소대 2분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참의부는 중앙의회를 가지고 군사와 민정을 아울러 통괄하는 단체였으며, 창설 당시의 주요 부서와 간부는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이다. 참의부는 활발한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제1중대장 백광운과 제2중대장 최석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백광운이 피살된 후에는 최석순이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있으면서 군사활동을 주도하였다. 신용섭이 참여한 참의부의 군사활동은 국내진격전으로 대표된다. 참의부는 압록강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신문」 1924년 7월 26일자에 실린 통계만 보더라도 참의부 군대는 1924년 4월부터 7월 16일까지 20차례 정도 국내에 진격하여 군자금 모금 및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계절적으로 독립군이 자연을 이용하여 대일투쟁을 하기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 통계에 따르면 독립군들은 평안도 의주군·초산군·강계군·선천군·영변군·위원군·태천군·용천군·자성군 등 평안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평안도지역이 많은 것은 압록강 대안이 평안도지역이라는 지역적인 이점 외에 참의부의 주민과 독립군 병사들 가운데 평안도 출신이 많아 이곳 지리에 밝았으므로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924년 7월 12일에 신용섭은 제2중대 2분대장 김창균(金昌均)과 동지 김창옥(金昌玉)·이기섭(李基涉)·한영환(韓永煥)·김영하(金永河) 등과 함께 위원군(渭原郡) 화창면(和昌面)에 출동하였다가 동년 9월 6일 동군 봉산면(鳳山面) 고각동(古閣洞)에서 일경과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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