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載休
1868-10-17 ~ 1934-03-2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재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영덕군 창수면(蒼水面)에 거주하였으며 영해읍(寧海邑) 만세운동의 연락을 받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1919년 3월 19일 만세시위대가 영해로 가던 중 인근 동리에서 영해로 가는 군중을 만나 다시 협의하여 시간 여유가 없으니 영해로 가는 것보다 창수리주재소로 가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창수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 앞에서 주동자 이수각(李壽珏) 등과 같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몽둥이와 곡괭이를 든 시위군중은 곧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주재소 청사·숙사 등 3동의 창문·벽·천정 등을 완전히 파괴하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오후 7시경 해산하였다. 그는 그후 이 시위의 주동자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죄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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