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周七
1890-10-09 ~ 1938-06-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주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點谷面)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점곡면에서의 만세운동은 송내동교회(松內洞敎會) 조사(助事) 권수백(權秀伯)과 기독교도 김태호(金泰鎬)·김학배(金鶴培) 등이 인근의 안평면(安平面)을 비롯하여 의성군내 기독교 인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추진되었고, 이 때 신주칠는 만세운동 계획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3월 15일 안평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직후 거사 준비를 진행시켜, 3월 18일 밤 9시에 동민 6, 7백여 명을 모아 횃불을 밝히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19일 아침에는 시위대 3백여 명이 주재소로 향하여 포위한 뒤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이어 밤 9시를 기해 동민 6, 7백여 명이 다시 운집하여 만세시위와 함께 주재소를 에워싸고 밤을 새워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시위는 3월 20일 일경의 총격으로 해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신주칠 등 주동 인물 21명이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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