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泰翼
미상 ~ (1924)·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태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창설된 대한독립단 영변지단 단장, 1922년 8월 대한통의부 교통부 부감으로 활동하였고, 1924년 통의부와 의성단의 상호 연합을 위해 의성단에 파 견되어 무기와 군사 협조를 구하고 돌아오던 중 중국 병사의 공격으로 피살 순 국하였다. 1919년 4월 중국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 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결성하 고 국내에 지단을 설치하자, 평북 영변지단(寧邊支團) 단장으로 임명되어 군자 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2년 8월 환인현(桓仁縣) 남구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 統一會)가 개최되어 항일독립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남만주 일대 독립군단체를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창설하자, 대한통의부 교통부 (交通部) 부감(部監)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 개조를 둘러싸고 대한통 의부 내 임시정부 지지세력이 1923년 8월 참의부를 조직하면서 통의부와 참의 부와의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이에 대한통의부는 편강렬(片康烈) 등이 조직한 의성단(義誠團·義成團)과 상호 연합하기 위해 신태익을 의성단에 파견하였다. 1924년 의성단을 방문한 신태익은 군인 7명과 무기 10정을 지원받아 돌아오는 도중, 중국 병사의 공격을 받아 피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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