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泰鴻
1887-08-05 ~ 1951-09-1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태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안악(安岳) 사람이다. 1919년 3월 29일 안악군 용문면(龍文面) 동창리(東倉里)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동창포 기독교회 집사 신태홍을 중심으로 장로 임성근(林成根)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은홍면(銀紅面) 온정리(溫井理)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3월 9일부터 거사계획을 세우고, 태극기 180여개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진행시키면서 3월 29일 거사하기로 합의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9일, 동창리 장에는 안악군의 용문·문산(文山)·안곡(安谷)·서하(西河) 등 각면과 강건너 재령(載寧)·황주(黃州) 등지에서 온 장꾼들로 붐볐다. 12시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교인들과 배영학교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눠주었고, 신태홍을 비롯한 주도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그곳에 모인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에 당황한 헌병 주재소는 안악읍 등지로 긴급 연락을 취하여 일경·헌병들의 출동을 요청하였다. 시위군중은 일경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총검에 해산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4월 21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