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炯斗
1895-10-02 ~ 1949-07-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형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8일 경남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통영 장날에 김재욱(金在旭)·박성일(朴星日) 등과 함께 3천여 명이 모여든 군중속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의 제지를 당하자 검거망을 벗어나 피신하였다가 통영으로 돌아왔다. 1921년 4월에는 김형기(金炯綺)·장근숙(張根淑)·최부근(崔富根)·이석용(李石用) 등이 조선독립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격문 1천 매를 작성 등사하여 인근 면리(面里)에 배포 할 것을 계획하고 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할 것을 독려하는 문서 약 30매를 복제할 때, 장근숙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거사(擧事)에 찬동하고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그는 1922년 1월 24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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