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化均
1910-11-03 ~ 1991-09-25·현대
이명·자·호 申海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화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가평(加平) 사람이다. 1924년 소년기에 부친 신 숙(申肅)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1926년 11월 북만주 중동선 이도하자(中東線二道河子)에서 김좌진(金佐鎭)이 영도하는 신민부(新民府)군사위원회 위원장 직속 별동부대에 입대하여 정찰임무를 담당하였다. 1929년에는 홍 진(洪震)등이 영도하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당원포섭과 아울러 재만동포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고자 노력하였으며, 1931년에는 한중연합군(韓中聯合軍)의 한국독립대대본부에 입대하여 2년간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3년 1월에는 한국독립군사령부(사령관 池靑天)의 지령으로 장춘(長春)에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으며, 1934년 봄에는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입학하여 안춘생(安椿生)·황일청(黃一淸) 등과 함께 군사교육을 받고 지청천(池靑天) 계열에서 활약하였다. 1937년 2월에는 만주 후방 교란책으로 길림(吉林)에서 활동하였으며, 1941년 3월에는 중국 국민당 씨씨단과 연결을 맺고 비밀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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