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斅均
1850-04-30 ~ (1927)·조선
이명·자·호 申輿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신효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홍천의 차봉철(車奉哲)은 1919년 3월 상순 광무황제의 국장 당시 서울에 왔을 때, 손병희 등이 독립선언을 발표한 결과 시내에서 많은 군중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동월 말 경 서상우(徐相祐)와 협의한 후 동월 31일 김기현(金基鉉)·김수완(金壽完)·차봉환(車奉煥)·임윤항(林潤恒)·이홍근(李洪根)·송경섭(宋景燮)·장일규(張逸奎)·김영욱(金永玉)·최승혁(崔承赫) 등을 자신이 거주하는 홍천면 신장대리(新場垈里) 시장의 고익진(高翼振) 집 앞 도로 위로 소집하고, 다음 4월 1일 도로를 수축하는 인부로서 다수 이민이 집합하는 것을 계기로 이날을 기해서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홍천군 북방면 성동리(城洞里)에 거주하던 신효균은 3월 30일 오창섭(吳昌燮)과 노동근(盧東根)이 성동리 김원봉(金元鳳)의 집에 와서 독립만세시위계획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마을 사람에게 전파하도록 권유하자 이를 수행하고, 4월 1일 오후 1시경 신장대리 시장에 모여 차봉철, 서상우, 김기현 등 200여 명의 주민들과 시위를 시작하여 홍천군 군청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신효균은 1919년 6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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