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老植
(1883) ~ 1907-12-24·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심노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연안(延安) 사람이다. 의병으로 황해도(黃海道)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심노식은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1907년 탄환(彈丸) 구입차 김제현(金濟鉉)·채중보(蔡仲甫)·우제경(禹濟經) 등과 중국 등주(藤州)에 자주 왕래하였다. 그는 1907년 12월 12일 해주에서 김제현·채중보·우제경과 함께 일본군수비대에 붙잡혀 위 3명과 함께 같은 해 12월 23일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다음날 24일 오전 6시 30분 경 수비대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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