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秉祚
1894-10-14 ~ 1945-09-2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심병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선천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여 서기로서 활동하였다. 1920년에 대한독립청년단 등이 통합되어 광복군사령부로 개편되자 정보부원 및 군기대 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군자금 모집, 정보수집 등의 사명을 띠고 국내에 입국하였다가 의주에서 체포되어 1921년 3월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 8월 출옥후에는 고향에서 한의원을 하다가 재차 도만하여, 1928년에는 동아일보 안동(安東) 현지국장으로 일하면서, 예수교장로교회를 설립하고자 하였으나, 신사참배거부자로 몰려 강제퇴거당하여 각처를 전전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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