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周鉉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심주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1월 충남 당진군(唐津郡) 외맹면(外孟面)에서 최종성의진(崔鍾成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병장 최종성은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1907년 9월부터 1909년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죽산(竹山)ㆍ양지군(陽智郡) 등의 지역과 충남 당진(唐津)ㆍ서산군(瑞山郡)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최종성은 휘하의 정선경(鄭善京)과 함께 1908년 5월 3일 밤 당진주재소에서 근무하는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심주현은 최종성의진에 들어가 1909년 1월 3일 충남 당진군 외맹면 송당리(松唐里)ㆍ외창리(外倉里) 등지에서 하군배(河君輩)ㆍ정선경 등과 함께 당목(唐木) 35척(尺), 현금 3원 등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5월 15일 정선경 등 약 20명의 의병이 외맹면 찬동(讚洞)에서 당진주재소 순사와 교전 끝에 수색을 당하면서, 심주현도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같은 해 7월 23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