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瑨澤
1868-11-08 ~ 1933-11-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심진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청송(靑松) 사람이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공포로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그는 경북 청송에서 거의한 심성지(沈誠之)의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서 군기(軍器)를 모집하고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이에 고무된 유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의 향교(鄕校)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갖추었다. 이어 심성지 의진은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모집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세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같은 해 4월 2일 인근지역의 김상종(金象鍾) 의진 및 김하락(金河洛) 의진과 연계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적군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적군 7 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慶州)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4월 심성지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로 하여금 3초(哨)의 군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의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고종의 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부득이 해산하였다. 심진택은 청송의진에서 안동의진과의 연락 등을 맡아 활약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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