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七石
미상 ~ (1919-03)·조선
이명·자·호 沈七夕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심칠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평북 의주군(義州郡)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이 지역의 3ㆍ1운동은 민족대표의 한분인 유여대(劉如大) 목사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동년 2월부터 거사의 준비가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3월 1일 오후 2시 의주 서부교회 광장(養實學校 운동장)에는 양실학교 학생과 교직원, 학부형을 비롯하여 사전에 연락을 받은 주변 농촌지역의 기독교인 등 1,000여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유여대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학생 및 군중은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튿날 2일에는 남대문 밖 광장에서 시위운동이 속개되었는데 시위대의 기세는 더욱 높았다. 천도교측 최동오(崔東旿) 등의 연설에 고무된 군중은 사기 충천하여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3일에는 1,200여 명의 군중이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일본군은 창, 칼, 쇠갈쿠리 등으로 무차별적인 탄압을 자행했지만 항일의 기세는 더욱 거세어져 갔다. 3월 27일에는 읍내 장터에서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4월 3일까지 군내 각지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실탄사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심칠석도 이와 같은 의주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일경의 발포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