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敬九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경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옹진(瓮津)과 해주(海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옥고를 치렀다. 옹진군에서는 서울에서 해주를 경유하여 3월 1일 아침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3월 3일 옹진읍 장날에 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주도자 다수가 예비검속 당하여 크게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뒤를 이어 천도교인들이 3월 8일 웅진 읍내에서 천도교 옹진교구장의 지휘로 군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3월 13일에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웅진군의 각 면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옹진의 군민들은 인근의 해주 등지에 들어가 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안경구는 3월 10일 수백 명의 천도교인과 해주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였고, 동 시위가 기독교·천도교·불교의 신자를 망라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안경구는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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