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 ~ 1938-04-2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기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안기석은 1918년 박병길 등과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을 결성하고, 앞으로란 신문을 등사판에 찍어내어 한인들에게 배포하였다. 1920년 3월 조선 빨치산 부대 연석회의를 열고 연합사령부를 조직한 후 부대들의 지휘체계 통일과 새 부대 편성에 주력할 때, 제5부대 대장이 되었다. 한인 빨찌산 부대들은 제19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는데 대대장으로는 임호가 임명되었다. '사할린 조선인 빨치산 특립연합부대'의 간부로 '자유대대'에 파견되어 활동하였으며, 이후 1921년 1월 초 빨치산 부대들을 정규군으로 개편하는데 찬성하여 변절자라고 비난받기도 하였다. 1921년 9월 이르쿠츠크 사관학교에 파견되어 3학년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다. 1922년 8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로-농 붉은 군대 군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후 국제 공산당 극동부가 한인 군사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해 뻬뜨로그라드 붉은군대 사관학교 내에 조선과를 설치했을 때,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이후 제76연대 부연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7월 3일 국제통합군사학교 3중대 볼셰비키당 세포당원과 후보 전체회의에서 위원장이 되어 회의를 이끌었다. 또한 '극동노력자 공산대학 및 국제군사학교 학생 책임일꾼 통합대회'에 참석하였다. 스탈린의 폭정 시기에 탄압을 당하다가 20차 당대회 이후 복권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0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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