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範龍
(1866)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安範用, 安範鎔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범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육도하자(六道河子)에서 한교공회(韓僑公會) 지부장(支部長)으로 활동하였다. 한교공회는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손극장(孫克章)ㆍ손병헌(孫炳憲)ㆍ독고욱(獨孤旭)ㆍ이천민(李天民) 등이 각처의 청년들을 모집하여 7월에 조직하였다. 본부를 환인현 마권자(馬圈子)에 두고 각처에 지부를 두었으며, 간부로는 특무부장 이천민, 서무부장 손병헌, 재무부장 윤세용(尹世茸), 검무부장 독고욱, 청년부장 사병희(史秉熙), 외무위원 김창천(金蒼天)이었다. 일제의 침략기관을 공격, 파괴하는 한편 일제의 주구(走狗)를 처단하였다. 안범룡은 한교공회 육도하자 지부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1920년 8월 19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5년 4월 정의부(正義府) 지방행정위원(地方行政委員), 1927년에는 정의부가 발행한 『대동민보(大東民報)』의 환인(桓仁) 지역 사우(社友)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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