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柄極
1893-12-28 ~ 1965-03-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병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안동군 예안읍 서부동(禮安邑 西部洞)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3월 17∼18일 양일간 이곳의 대규모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 제1차 예안읍 장터시위는 민족적 측면에 선 애국적인 면장과 면서기들이 주동이 되어 애국군중을 규합하여 봉기한 만세운동으로 당시 다른 지방의 면장과 면서기들이 대부분 친일적 경향이 강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높아지자 그는 면장 신상면(申相冕)을 비롯한 애국인사들과 면서기를 규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 장터에 비밀연락을 받고 나온 수천 명의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뒷편에 있는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거리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리고 수천의 군중은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으로 유리창과 문을 파괴하였다. 이어 3월 18일에도 600여명이 모여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해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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