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相潤
1911-07-14 ~ (1949-05-2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字:景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상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5년 11월 29일 안상윤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소년회를 화구소년회로 이름을 바꾸고 집행위원에 선임됐다. 이 단체의 강령은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인권의 유린을 당하지 말자, 우리는 민중해방운동에 훌륭한 장래 일꾼이 되자” 등이었다. 1927년 4월경 안상윤은 화구소년회에 노동야학회를 설치, 강사로 참여했다. 1929년 4월에는 서울 견지동(堅志洞) 서울청년회 집행위원회에서 회원으로 승인받았다. 또한 5월 11일에는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선전부 상무를 맡았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2일 사상 활동과 관련해서 종로서에 검거됐다. 이후 안상윤은 안동청년동맹 와룡지부 등에 가입했으며, 1931년 3월 ‘안동콤그룹’을 조직해서 책임비서를 맡았다. 이 단체는 안동읍, 와룡면, 예안면(禮安面), 임하면(臨河面) 네 곳에 책임자를 정하고 노동야학회와 맑스주의 강좌를 개최하여 노동자・농민 청년층을 규합하고자 했다. 1932년 10월에는 경북 영주지역의 사회주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지도부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3년 3월경 체포됐다. 안상윤은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1934년 7월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1937년 3월 10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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